postnews.egloos.com

전시뉴스,디아티스트뉴스,세계자동차뉴스,

포토로그 2019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킨텍스


메모장



재즈 피아니스트 윤강욱 특별기획초대작가부스 개인전-- 즉흥연주--피카디리국제미술관 모닝포스트인터넷신문


솔부엉이 명인 감선교 -- 경북청송 주왕산 솔부엉이 명인 김선교

솔부엉이 명인 김선교 도자기 체험관/김순희 전시관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왕산로 573
민박
예약상담 문의>
tel ; 054-874-7782
mobile ; 010-4738- 7782

다스미차 -- 우즈베키스탄 건강차 -간,다이어트,변비,고지혈증,손발저림,황달증상 연예영화뉴스


2017신미술데전 --구리아트홀 2017


딱좋아 청인 박세준 ㅡ 힐링바이오코리아 건강식품


힐링바이오코리아 쇼핑몰소개


서예를 시범보이는 박세준 회장


딱좋아 박세준 회장


딱좋아 박세준 양생의학 힐링바이어코리아 대표


김종록 작가 ==BFAA국제아트페어 참가 ;; 벡스코전시


이현지 작가--코엑스 조형아트서울 전시 미술뉴스


새오름갤러리 --이현지 개인전 포토갤러리


김근배 초대전 --장은선갤러리 인사동


이영수 작가 -- 아산갤러리 개인전 미술뉴스


수소수 찾는 주민 급증 모닝포스트인터넷신문

https://www.youtube.com/watch?v=mqC3_mMGknU

수소수란,수수수찾는 주민급증 모닝포스트인터넷신문


용인 수지 카페갤러리 브레아 개관 초대3인전--- 로즈박,박의현,김연주 예술공연온라인뉴스


갤러리 브레아 개관초대전

https://www.youtube.com/edit?video_id=3LDSaU0v0So&video_referrer=watch 공연예술뉴스

https://www.youtube.com/edit?video_id=3LDSaU0v0So&video_referrer=watch
구구킴 핑거  페인팅 인사이드미-- y-gallery,윤당갤러리--GuGuKim Finger Painting Insideme

모라비아-체코관광청 --여행관련 간담회 모닝포스트인터넷신문


인사동 크리스탈 환타지 인사동


그림-115인의 화가,시-- 김월수 출판기념전 미분류


'천재 수채화가' 김건배 국내 첫 전시-- 갤러리 목향 인사동


인-코스메틱스 코리아In-cosmetics Korea전시회 개최 코엑스에서

국내외 퍼스널 케어 원료 공급업체들이 화장품 제조 및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제품을 선보이는 신규 전시회인 인-코스메틱스 코리아In-cosmetics Korea가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D1 홀에서 개최됐다.

김지선 초대전 The legend-other planet story 인사동


김지선 작가 초대전 ‘The legend-other planet story’가 서울 종로 인사동 장은선 갤러리에서 6월3일부터 9일까지 열린다.

중견 작가인 김지선의 작품은 마치 시리즈 동화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서양화에 동화적 상상력을 접목시켜 동물과 식물들이 아우러지는 동화 속 동물원을 보는듯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

2015 스웨덴 국경일 행사 모닝포스트뉴스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폐회식 제작발표회 서울프라자호텔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 제작발표회가 열린 3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김황식 조직위원장과 주요 참석자들이 결의를 다지는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김윤석 사무총장,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홍보대사 김덕수, 왕기철, 김경호, 송소희, 김황식 조직위원장, 홍보대사 임형주, 박명성 총감독, 박금자 안무총감독, 김태욱 총연출

제37회 국제환경산업기술&그린에너지전(ENVEX 2015)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환경전시회인 "국제환경산업기술&그린에너지전(ENVEX)"는 매년 국내'외 약 300개 업체 및 5만 5천명 이상의 환경전문 바이어가 약 2,000억 원 이상의 계약이 달성되는 등 환경 기업체들의 신기술 소개 및 국내·외 환경시장 확대를 위한 최적의 마케팅 장으로 2015년에는 6월 2일 코엑스에서 개최됩니다.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중전은 또 다시 할 말을 잊었다. 그녀를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던 사람들은 오늘 날까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녀를 이용하려고 아부하는 사람도 허다했고 그녀가 이용하고 버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넓은 대궐 안에서도 민중전을 받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전이 병환이 났을 때는 황제 왕도 염려를 했으며 조정의 중신들이 모두 민중전의 쾌차하심을 빌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 같은 중전의 파워는 막강했다. 그 같은 중전이기에 신명을 다 바치겠다는 이동인의 말을 또 들었다 하여 크게 감동할 것도 사실 없었지만? ……! 민중전이 수하들에게 잔치상 환영 만찬차비를 짜증난 음성으로 날카롭게 하명(下命)하는 것 자체가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여인이 남자에게 대한 호감은 이 같은 짜증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소문듣던 중전 민씨와 실제로 만나 본 민중전과는 … 세상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전은 솔직하고 청순하며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라 생각되었다.

  그가 사다 바친 고려청자를 닮은 파리대접 같은 여인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여자다운 여자! 이 같은 중전의 진정한 가지를 알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 오직 이동인 한 사람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동인은 자시 자신만이 민중전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사실이 아님을 실제 만나 본 후 알게되었다.

“중전마마!(황후마마)”

  하고 이동인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불렀다.

“중전마마를 위하여 신명을 바치겠나이다! 어떠하옵신 분부라도 내려 주신다면 견마지도를 다 바쳐 거행하겠나이다!”

  이동인은 자신의 말을 되씹는 듯 눈두덩이를 지쳐 감았다. 짙은 속눈썹 위 뺨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중전은 홀린 듯 그 모양을 바라본다. 민황후는 갑자기 느닷없이 봉이를 불러 명한다.

“여봐라!”

“봉이야?”

  잔치 준비를 하게하여라. 김몽룡 무당박수도 부르고 …!

“……”

  이동인은 입가에 은은한 쓴 웃음이 서렸다. 그러나 산전수전 공중 전의 온갖 격랑의 파도를 헤치고 살아 온 이동인은 비난의 쓴 웃음이 아니었다. 이동인은 알고 있었다. 그는 처음 입궐하라는 본부를 받았을 때 중전 명성황후를 뵙는 일이 매우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틀림없이 큰 경륜 물으시고 자기의 역량을 시험시험하려 하실 터인데 …?

  걱정도 했었다. 그러나 중전의 얼굴 대하자 그가 결코 세상에서 말하는 시아버지 밀어낸 독한 여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민중전(황후) 목소리를 듣고 한 두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는 뒤에는 더구다나 이상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모시고 있던 상궁 나인들에게 날카로운 음성으로 잔치 차비를 명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중전이 자기에게 대하여 적지 않은 호감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중전과 한 두 마디 대화 소통이후 이동인은? 이상한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어떤 대화를 하려 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

중전은 전차에 머리 박힌 여자처럼?  머리가 멍할 정도로 황홀했었다.;

佛敎와 사찰(寺刹)과 人生無常 !

그런 일에 대하여 맛뵈기로 두서없이 물었다.  그것은 오로지 이동인이 대답하는 품새 목소리를 듣기 위한 질문 같았다.

그러나 그같은 덕담수준은 곧 끊어지고 만다.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된다.

민중전은 당사의 머릿속이 몹시 혼라스러운것 같았다. 그는 당신의 머리 속이 혼란하다는 사실에 은근히 부화가 치밀었다.

  “대사 !”

  “상감(황제) 안전에서 잔치 무당굿풀이 비용을 절약해 군함과 대포를 먼저 사라고 했다면서요 ”

  “모두 나를 두고 한 소리가 아닌가?”

  “……”

  이동인은 깊이 고개를 숙이고 변명도 하지 못한다.  황제 앞에서는 청산유수였으나 황후앞에서는 수줍은 소년처럼 얼굴만 붉히고 묵묵부답이었다.  민.황후 그것이 불안스럽지만 즐기고 있었다.

  중전은 미남자인 이동인이 장삼가사 걸치고 단단한 대장부 모습에 …….  웬일인지? 모를 가슴속이 확 뚫리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매료되고 만다. (이미, 파리 대접으로 그를 호감있는 느낌을 받은 바 있기에 ……)

이 같은 감정의 요동치는 설레이는 황후의 마음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황후는 간신히 진정하고

  “앉으시오 !”

하고 당신도 모르게 화난 듯한 목소리가 되었다.

  ‘이동인’은 앉기를 사양한다. 

  “황공무지로소이다 ! 빈도가 어찌 앉으라고 앉을수가 있겠나이까?  ”

시립태도를 더욱 민황후는 견지하는 이동인이 마음에 들어한다.

중전은?

  “황감하오이다. 너무나 황공하여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

그 목소리도 좋다고 느꼈다.  훤칠한 장신체격에 울리는 굶직한 …… !

바리톤 목소리의 훤훤장부 ‘이동인’ 아닌가?

  “중(스님)에게는 내외하는 법이 없사옵니다요. 옛날 대비 왕비들도 법사나 왕사를 침전 가까이 불러 설법을 듣지 아니하였습니까?”

  “……”

  “그렇다고?”

  황제는 황후까지 중을 가까이 하려 하는 태도를 결코 달가와 하시지 앟았다.  비록 승려라 하니 외간 남자를 지밀상궁이 지키는 황후 규방까지 들이고 싶지는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전 명성황후는 한번 입에 뱉은 말은 거두어 들이는 성미가 아니었다. 기어이

  “이동인을 불러주시옵소서 !”

세상 풍상 다 겪은 풍운아 스님이오니 …‥.

“더군다나 한번 구경을 하고 싶습니다요 ”

  “…‥.”

그리고 이동인은 지밀상궁 침전까지 들이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황제의 비위에 거슬릴때에는 즉 역린(용의 비늘 건들려)의 분노를 자초해서 사서 벼락을 맞는 꼴이 될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생목숨까지 읺을지도 모르는 대모험이었다.  그러나 이동인에게는 운이 있었다. 황제는 한참 생각하시더니

  “너의 말이 옳도다 !”

  “이후 나를 위해 더욱 좋은 계책이 있거든 아뢰어라 !”

라는 분부까지 내리신 것이다.  이동인의 영광은 비길데가 없었다. 봉원사의 천한 ‘중’으로 (상감)황제 지척에서 배알하는 것은 황공한 일이거던 앞으로 국책을 의논하는데 참여하라는 분부는 오히려 뜻밖이었다.

이후 이동인은 궐내에 무상출입해 황제에게 개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아뢰었다.  그의 행운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황제의 칭찬에 안달이난 민황후가 몸소 이동인을 내궁으로 들라는 분부까지 받은 것이었다.

 요승 이동인은 가짜스님이 아니었다.  스님, 이동인은 한용운 사명대사 수준으로 역사가에 의해 재평가되어야 할 정도로 애국열사 스님이셨다.

  “무당굿당과 잔치는 삼가주십시요!”

하는 말씀 아뢸때는 잔등에서 식은땀(진땀)이 다 날 정도였다. 그것은 진실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위험한 도박수였다.

황제내외를 움찍했을 정도로 긴장시켰으니 황제는 명성황후의 무당 풋닷거리에 진력이나 계실 것임에 틀림 없다고 이동인은 간파했기 때문이다. (도사 스님답게 독심술(獨心術)이라도 마스터 했다)

그러기에 이 위험천만한 명성황후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무당굿 비용, 고만 쓰라고 까지 막 나갔던 것이다. 이 말이 들어맞아 황제가 동의를 표시하는 날에는 이동인의 대담함과 충성심 !  그리고 목숨을 건 용기가 증명되는 셈이다.

  그의 목적은 달성될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솔직하면서 드물게 보는 큰 인물이라는 것을 황제가 인정하는 셈이된다.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황제가 이동인의 중간 손바닥(장중)에 들어오는 시각이다.

  황제내외는 감동을 받을 정도로 이동인의 청산유수 같은 언변에 탄복하고 만다.  이렇게 말하는 이동인의 큰 기맥은 뿜어 오르는 후지산 화산 용암같이 뜨거웠다. 그러나 그의 안색과 음성은 진실로 애국 충정스러웠다.

  “황제폐하 ! 일본과 척을 지지 마시고 손을 잡아 주시옵소서 !

미국과도 교통하옵시고 영국도 들이시고 프랑스, 독일도 국교를 여시옵소서!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아니되옵나이다 !”

  “…‥”

  마치 부자간의 갈등을 부추기라도 하는듯 고종황제 내외는 감동먹으면서도 아랫목에 듣는 순간 몸에 전율느끼시는 듯 훔칠 !  이동인은 일본으로부터 군함 위력에 마치 용포자락이 떠는듯 했었다. 대포까지 차관으로 사와냐?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황제폐하 !”

  무당과 굿판은 이제 그만 여시고 조선의 기개를 내외에 과시해야 될 때라고 사료됩니다. 소승(빈도)가 목숨걸고 아뢰나이다. 이 한몸 버려 종묘사직을 굳게 지킨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이동인은 낙루하면서 읍소까지 하였다.

  지나간 여정이 오버랩 되었다.

  김옥균은 자신있는 어조로 민영익을 설득했다.  그럴 무렵, 중전으로부터 파리대접을 매우 흡족하게 여기신다는 분부와 함께 이동인의 일을 물어 오신 것이다. 민영익은 이동인의 일을 중전에게 아뢸 수 있는 절호의 챤스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동인의 저간의 스토리를 소상하게 아뢰고 궐내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내립 시사 간청까지 해보았다.

중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다.

  “하루바삐 상감을 뵈옵토록 주선하겠다고 전하여라 !”

  “인재를 그대로 썩힐수가 없지 않겠느냐?”

  중전의 말씀은 뜻이 깊었다. 이렇게 하여 성균관 유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도성출입조차 마음대로 못하던 중(이동인)은 대궐로 들어와 황제 내외분을 알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황제내외는 첫눈에 이동인이 해박한 주체적 식견에 마음이 끌려 매혹당할 정도였다. 이동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아니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도도히 아룄다.

  “황제폐하!  위기는 기회이옵니다.  온 세상에 부끄럽지 않을 대 조선국을 새로이 개국하십시오.”

  “…‥ ???  !!!”

 상소할터인데 ‥….  그러기에 민영익은 주저하고 있었다.  이동인의 중이라는 천한 신분이 걱정거리였기 때문이다.  김옥균은 쐬기를 박았다. 민영익에게 비록 중이긴 하나 그 이름이 이미 일본 조야에서 알려져 있어. 그를 중용하면 여러 가지 난관이 가로 놓인 한일교섭에 유익할 것이 틀림없다고 보네만 …‥.

  “…… !!!”

  그러나 민영익은 입맛만 다신다.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내가 중전에게 어의를 전달하지요. 그 사람도 중전에게 아뢸 말씀이 있다면 나를 통해 말씀해 주겠소이까?”

  “그러지 말고 먼저 황제에게 알현할 기회만 마련해 주세요. 뒷 일은 우리가 감당하리라 !”

  “감당하다니?  (어떻게) ”

  “그 사람에게 알현만 허락하신다면 황제께서도 느끼는 바가 계실거라 사료되오. !” 

  “이때가 어느때요? 국가위기 상황 아니오. 고루한 유교문화탓에 인물을 놓친다면?” 하고 이동인은 대답했다.

  파리대접 한쌍을 방에게(대접)헌상하고 왕은 민중전(명성황후)에게 다시 건넸다.  이 파리대접 덕분에 훗날 임오군란때 명성황후는 목숨과 맞바꿀수가 있었다.  이동인은 요승이 아니라 생불(生佛)사명당 같은 수준이었다.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이나 화석정 정자 기둥에 미리미리 뜰기름을 발라서 칠흑같은 어둔 비오는날의 선조 일챙의 피난길 (몽진 : 신의주)을 불 밝혀 예비하신 성인 수준과도 같았다.

  일본 사쿠라 살구꽃잎 모양과 나비 모양이 질서정연하게 음각원 파리 대접이였다. 수정구, 옥돌과도 닮은 색깔이었다. 그녀는

  “이것을 바친 사람이 누구라 ! 하드냐?”

민영익에게 파리대접을 바친 인물에 대하여 명성황후가 묻는다.

이때 이미 민영익은 김옥균의 소개로 이동인을 만난 일이 있었다. 김옥균은 이동인을 상감께 배알할 수 있도록 민영익에게 부탁까지 했던 바라 그러나 민영익은 중을 어전에 어떻게 …‥ 성균관 유림들이 벌떼같이 ? 반대할 터인데 !

  일본 조야에 명성을 널리 얻은탓에 거꾸로 일본 수시사로 갔던 김홍집 내각을 통해 조선 조정에 전해졌다.

  “신이 이동인의 소문은 동경체제하는 동안에 대일교섭(對日交涉)외교에 많은 조언을 해준 개화승 이동인의 공이 컸나이다 ! 라고 고종황제를 배알하는 이동인을 귀국하라고 어명을 내릴 정도였다.

  “밀항의 죄는 불문에 붙일것이니?  귀국하여 국가외교에 전념토록 하라 ! 교지가 떨어졌다”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접한 사람은 3일 天下 영웅혁명가 고균 김옥균(金玉均)이였다. 한때 김옥균도 복택유길 문하생에 든 인재(人材)였었다. 이동인은 귀국 선물로 에머랄드빛깔의 유리쟁반 암수 한쌍을 고종황제에게 헌상하였다.

  “파리 !   구려?”

  김옥균은 정중하게 포장도 오동 나무상자를 만져보았다.

  “양물(洋物)인가?”

  “아니요”

  “그럼?”

  “일본제품이요 !”

  “…‥”

  복택의 말은 틀린것은 아니지만?  그는 전체국가보다 먼저 자기자신의 입신양명(출세)를 꾀하여야 할 야심가였기에 잠시 머리깎고 신분을 중으로 위장한 소영웅이라도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

  “나라보다는 먼저 나 자신이 두드려져야 한다” 자신이 강자(强者)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남을 쓰러뜨리고서라도. 어떤 책략(策略)을 쓰더라도 자기 자신부터 두드러지게 해놓고 볼일이다.

그러나 복택유길은 개인이 승리하는 길, 개인이 출세할 수 있는 지름길은 가르쳐주질 않은 셈이다. 그래도 그는 이때부터 이동인 속명(俗名)의 조센징 돌중을 ‘제자’로 받아들여 복택유길 문하생으로 인정해주었다. (자기집, 드나들기도 허락한 셈이다)

  이동인의 명성은?  차차 일본 조야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 땅에서 오히려 발굴의 실력을 발휘하다가 쉬운감 마저 없지 않을 정도였다. 고국에 있을때는 뿌리길고 가지무성한 권문세가들에 짓눌러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미꾸라지가 용이 된 기분이었다.  그의 범상치 않은 풍모와 두드려진 처세술과 물흐르듯 막힘없는 박학다식의 달변가인 그가? 복택유길은 여전한 어조로 대답했다.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방법은?  경제제민 즉 ! 경제제민(經濟濟民)의 넉자 뿐 일세 !” 

  “난국난세에 개인의 무용(武勇)으로 국가가 강성하던 때는 이미 지났어 !  지금은 바야흐로 전체 국민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국가으로서 체제(體制)를 정비(整備)할때요 !”

  “일국의 강약은?  나라 경제력에 따라 국방력까지 좌우하는 법이요”

경제제민으로 백성들을 안도(安堵)케 하는 것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근본(根本)인줄로 생각(生覺)하오 !“

  “…‥ !!!”

  이동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음미(吟味)하듯 그 말을 필기구에 옮겨적고 있었다. 복택유길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복택유길의 이르는 말 보다 가슴에 요동칠 정도로 사무치는 것이 있었으니 복택은 개인의 무용(영웅론)을 자랑하든 시절 운운 대목이었다.

  이동인은 장강대하 같은 열변을 청산유수처럼 토로하여 조선의 현상과 열국들의 태도를 우려했다.  복택유길은 선비다운 학자풍모로 화사한 손길로 긴 나무화로 언저리에 사뿐 올려놓고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몸과 정신이 건강하면 병(病)의 침노를 걱정할 것이 없지 않는가?”

  “하이!  소유데쇼! (네. 그렇소이다)”

  이동인은 알랑방구를 꿔었다.  맞장구다. ‘나라가 부강해지면 열국의 침략을 구태어 걱정할 것 없지?’ 복택의 그윽한 눈길이 다시 이동인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국강(國强)하고 본다면?  어찌 이웃나라들이 우려될까 ! 이웃을 무서워하기전에.... 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계책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야 ! ”   “…‥”

  복택유길은 말씨는 마치 자기 제자들게 강의하는 것 같았다. 이동인은 다시   “어떻게 나라를 부강하게 합니까? 묻는다 !”

  “네(하이)!”

  선생님의 학문은 훔치러온 도적이오 ! 선생님의 덕행 품성도 동시에 훔치러 왔소이다. 그 일부분이라도 이 학문 도적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

  “조선에서 왔다고 했는가?”

  “하이 ! (예. 그렇습니다요)”

  그때서야 이동인은 방으로 인도한다.

   “도적이란?  과공비례(過恭非禮) 지나친 말이고 …‥ 나에게 특별히 문의할 일이라도 있는가?”

  “하이 ! (네. 있습니다)”

  “소우에쓰,  선생님께서도 이웃나라 조선이 국내 형편을 잘 알고 계실줄로 압니다마는 …‥.”

  “그래서 ?”

  “선생님과 단둘이서만 이야기 나누고 싶소이다 ! ”

  “그럼 너희들은 저리 딴 방에 가 있거라 ! ”

라고 복택유길은 다른 제자들을 방에서 내보냈다.  복택과 단 둘이만 남은 이동인 !  그리고 이방 저방 창문밑에서 .....

  “후꾸자와쎈세이(福澤諭吉先生 !)”

  “후꾸자와쎈세이(福澤諭吉先生 !)”

  “후꾸자와쎈세이(福澤諭吉先生 !)”

라고 일부로 큰 목소리로 “살리룯아사이!”(살려주세요)

부르짖고 돌아다녔다.

  “…‥”

어느창가 방안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왜 그러는가? (웬일인가)”

하며 일본 복장의 중년 사나이가 나왔다. 그가 꿈에 그리든 복택유길이였다. 이동인은 이 기회를 노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우선 복택유길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선생님 ! 저는 조선에서 온 도둑이올씨다 !”

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복택유길의 의안한 표정으로

  “아니? 도적이라니?…‥.”

  의통 요승은 얼굴에 철판깔고 본원사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이동인 요승은 본원사에 묵으면서 더욱 일본어의 실력을 연마하는 한편 지금 일본 조야에서 명망이 두드러진 인물로 그를 이끌어줄 인물을? 경응의숙 복택유길을 점찍어 두었다 !  이동이은 복택유길을 찾아갔으나 문전박대당해 허탕을 치고 쫓겨나야 했다. 복택유길의 경응의숙에는 복택의 문하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있어 이동인은 그를 면대할 기회가 좀처럼 날것 같지를 않았다.  한 두 번 냉대에 결코.... 그러나 그는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역경과 천대의 모멸감 속에 이미 단련된 그는 집념의 화신이었다.  네 번, 다섯 번, 생떼를 쓰다시피 거듭 거듭 찾아갔었다. 그래도 복택유길은 만날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그는 비상대책을 썼다. 이미 읽어둔 손자병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할수없이 그는 어느날 기회를 봐서 현관정문이 아닌 후원쪽문으로 해서 숨어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청산유수 같은 그의 달변은?  그가 접촉하는 모든이들을 탄복케 하였다.



《혁명》

《혁명》

혁명에 실패한다면

멸문(3족)을 각오해야한다.

‘정여립’처럼 말이다.

충신과 역적

군왕과 혁명가는 백지한장 차이 일발

전봉준을 누가 밀고하였는가

박정희를 밀고 당했지만

하늘이 그를 도와주 혁명에 성공하듯

天佑神助 大丈夫가 아니라면

혁명은 꿈도 꾸지 말라 !

조상이 천하제일명당(天下第一明堂)

계시기에 가능(可能)

한 것이리라

山川精氣를 타고나야

혁명은 성공하는 것이다.

대원군도 천, 하,장, 안 집사 下人 4명과

五인방 결사대를 조직한 후 철종 후사왕으로

명복 차자를 혁명적으로 세워 옹립

유교의 패거리 서원을 혁명적으로 철패했었다

 

《여명(黎明)》

  먼동이 트는 국제정세와 시대흐름에 부응치 못하고 개화의 물결을 높인다면?  크게 후회하실날이 !

  이동인은 힘주어 말한다.

  대원군은 외면하여 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이때 이동인은 일본 <복택유길>에게 교육받고 있을때 ‘요일’의 유래를 기억해 내고 있다.  절해고도 로빈손쿠루소가 한 사람의 야만인을 구출한 날이 금요일 ! 친구발견 감사를 섬의 수호신에게 감사 첫기도를 딴 Friday 프랜드에서 프리대이로 정했다.  Defoe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5세기 독일에서 잉글랜드 색손인에게 전해진 것이고 복구의 신화나 복구 고대의 자연숭배 사상에 기원이 있음을 짐작케 하지요.

Sunday는 고대 영어에서 Sunandaeg.Sun's day, 즉 “태양의날” Monday ‘달의 날’ 태양과 달이 주로 자연숭배의 첫 대상이었음을 알수 있죠.

  복구민족의 전쟁의 신 Tew이름에서 ... Tuesday, 火요일이 (火星의 神)생겨나고.... Wed 수요일은 복구의 Weden 이라는 무섭고 힘쎈 신의 이름에서 딴것이지요.  목요일  Tuesday 는 복구신화에서 Thur 번개신(여신) 이름에서 유래 되었고,  (Sa) Friday는 처인 Frig 여신에서 땄고 Saturday는 Satrun(saein)이라는 고대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농업의 신에서 비롯되었다 하겠습니다.

(* 月(MON) 火(TUE) 水(WED) 목(THU) 금(FRI) 토(SAT) 일(SUN) 음양오행 7가지 요일을  水 木 大 土 金  순서로 (동양오행 상생 사상으로 재편) (水 木 火 土 金 月 日) 正易사상에서 고쳐져야함. 철저히 첫 月자리에 水요일이 시작)

 

"통상자체도 그렇치?“

일방적 강요에다가 굴욕감을 씻을수가 없으니?

이동인이 대답한다.

“대감!”

그것은 우리나라가 국제 외교지식이 부족하여 불리한 조약을 맺은데서 오는 것이지요.!

“…‥”

다만 세계정세에 눈뜬 젊은선비를 양성하지 않는 위정자들 책임이 크오 !

이 지구촌 6대양 5대주에 교통하고 교류하지 아니하면 고립되나이다.  통촉하소서.

“이놈봐라!”

“매국노처럼?”

“매국노는 아니올시다.  이동인은 항의했다.”

소승은 인민의 은인이 될것이옵니다. (소승의 신념이 성공하는 날)

"이놈봐라 !“

“이놈이 점점 더 요망한 소리만 하고 있구나?”

대원군은 역정내고 만다.

대원군은 담뱃대를 입에서 뽑으며 후 ~ 후 하고 연기를 내 뿜는다.

우물정 井字 연기 같았다.

“이동인 대사 !  누가 너를 불렀느냐? 고 !”

대원이 되묻는다.

대원군은 마치 그 일을 위해 불러온 것처럼 말한다. 이동인의 배짱에 말려든 것이다.
“이적찬미(夷狄讚美)로 이름을 날린다기에 대사를 불렀소?”

“대감께서 그처럼 분부하신 의논이 있다면 ?  일인(日人)이나 양인(洋人)을 금수처럼 생각하시는데 더 무슨 말씀을 아뢰오리까?

“그러면 대사는 그 자들을 무엇으로 알고 이땅에 뜰어 들였단 말이냐?”

“소승이 그들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옵니다!”

“금수같다는 표현은 걷우어 주소서!”

“그 자들은 통상교역을 빙자하여 이나라 경제를 교란하고 영토침략의 야망을 품고 있는 것이니라 !”

“…‥.”

“물어본 일을 다 물어본 연후에 죽여도 늦지 않을터니 내 방으로 들라하여라.!”

대원군은 명을 내리고 먼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동인은 토끼가 용왕국에 갔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으로 뜻밖에도 대원군과 대화할 기회까지 얻고 말았다.  아무튼 그는 운이 좋은 달변가 덕을 톡톡히 본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가슴은 쿵쾅 뛰고 요동쳤다. 당장 목숨을 보존하게 된것도 기뻤지만 그에게 한가지 꿈이 있었다.  그는 몇마디 수락으로도 대원군의 인물됨을 간파했었다.  정이 많은 사나이다. 체격은 작으나 그릇은 크다고 느꼈다.  인간의 본성에서 결코 떨어져 있는 민중전과도 대비가 되기도 했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권력욕에 단순집착한 냉혈한(冷血漢) 쯤으로 경멸했든 마음은 사라지고 이동인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

(대원군과 며느님이신 민중전의 손을 잡을수만 있다면 …‥?)

정말 꿈속의 꿈 (夢中夢)같은 희망사항이다.

“…‥.”

그러나 인간의 꿈은 바이블에서 도둑처럼 들이닥친다고 했든가?

  “청함을 받았다고?” 대원군은 이동인을 노려 보며 말했다.  이동인은 오히려 고개를 더둑 빳빳하게 세우고나서

  “사람을 보내시고 교지를 내 태워 초청하시니, 환송하외이다.  바라건데 초청했으면 끝까지 손님대우로 대접해 주시오소서!”

  “…‥.”

  “네 이놈 !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손님초청으로 거들먹거려 이 돼먹지 못한 중놈아 ! 무엄한놈 같으니라고 …‥”

대원위대감께서는 인간의 신분에 대하여 차별을 하시지 아니 하십니다요.  다른분 같으면 소승같은 인생을 일부러 부르지도 않을터인데 교지까지 보내 부르시는것 만으로도 대감님의 크신 도량을 짐작할 수 있는가 하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동인의 어조는 추호도 비굴하지 않았다. 당당했다.

대원군은 어이없는 모양을 짓는다.  그러나 곧 이동인의 옆에 서있는 천희연은 힐끗 보았다.

  “천서방 !”

  “네 대감마님!”

  “저자가 패를 쓰고있는 듯 하다!”

  나도 물어볼 말이 있으니 저자를 당(堂)에 모르게 하여라 !

  “저놈을 이대루 두굽시오?”

라고 중얼거린다.  그러기에 공덕리 대원군이 별장으로 끌려와 그 마당 한구석에 내동댕이 쳐졌을때에도 그곳이 어딘지 분간조차 할수 없었다.

  “네 이놈 ! 바로 네놈이 요승 이동인이구나?”

라는 목소리와 함께 마루로 나서는 사람을 보고서야 대원군와 관련이 있는 별장쯤으로 짐작이 갔다.

마루로 나서는 사람은 바로 여 며칠전 편교자를 타고 가던 대원군 이하응이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이동인은 생각했다.  저를 잡아온 사람이 대원군이라면 살아돌아갈 가망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려라 라는 말이 있듯이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노련한 이동인 아닌가?

그는 왕년에 일본에가서 복권유길 스승을 만나기 위해 계략을 쓴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도적이요!” 외친 용기도기억해 냈다.

  복택의 관심 끌기 작전으로 그는 우선 대원군의 관심부터 끌어야 판다고 판단했다.

  “대원위 대감 !” (註 : 대원위 ! 로 높혀 부름)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소승 빈도 이동인 문안 인사요!”

그렇잖아도 대감을 한번 뵈옵기원했던 바 이렇게 청함을 받자와 광명이요…….  정신을 잃는다.

그가 가고져하는 청수관 뒷실목안에서는 그의 동선을 노리고 지켜 서 있는 두 패 교군 별동대가 그림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도망 못가게)

정신을 잃은 이동인은 가마속으로 옮겨지고 그대로 대원군 별장을 향해 내달렸다. 가마속에서 소변이 마려워 어렴풋이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내가 여기 가마에 있죠?”

  “어떻게 된 일인가?” 여보! 가마꾼 !“

  그는 자기 몸이 지금 심상치 않는 사람들의 수중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신이 쑤시고 아파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가다가 종로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시체를 한강아리수에 던져 물고기 밥이 될 위기를 느꼈다. 아무리 민중전의 사랑을 받고 고종 황제의 신임을 받는 몸이라도해도

  “미천하기 그지없는 일개 승려 아닌가?”
어느때 뉘손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시비를 가려줄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으으음 ...”

  하고 이동인은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지금 죽기는 원통하다 !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많은데 !”

  “모른다니 ?”

 네놈들이 천, 하, 장, 안(千, 夏, 張, 安)소식을 !

  훤히 유리알같이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 ... 너희들이 요승 이동인 중놈을 모르다니?

  “이름만 들었나이다!  그러나 ! 이름만 알고 될 일 아니지 않는가?”

대원군은 참모들에게 더욱 화를 냈다.  구희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그 중놈을 어찌하실 심산이십니까?! ”

“그 놈을 잡아들여야지 ?”

“즉각 잡아다 대령 하겠나이다!”

“낮을 모른다 하면서 ... 어떻게 즉각 잡아 오지?”

“소인네들에게 세상에 못할일이 어디 있겠나이까?”

천. 하. 장. 안 아닙니까?

“대감마님, 분부만 내리시오면?”

“알았다. ! 네일 저녁 안으로 잡아 오렸다 ! ”

“이리로 잡아 끌고오면 되지요?”

“그럼 !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이었나?”

대원군은 역정만 냈다.

아닌가 아니라 천희연과 안필주가 들어 못할 일이란 없었다.

이튿날 저녁 이동인은 서대문 안에 있는 일본 공사관 청수관으로 찾아가던 길에 정체모를 괴한들에게 납치당한다.

울화가 치미는 일은 또 있었다.

궁중에 요상한 중놈이 지밀 안까지 출입하여 왕과 중전에게 개화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요승이란 자는 바로 대원군이 공덕리 별장에 갔을때 광화문에서 마주친 그 오만 불손한 이동인 승려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대원군이 말했다.

“나라가 망하려면 요승(妖僧)이 날뛰는 법이야 !” (요승 ‘신돈’과 노국대장공주의 스캔들 연상>

고려 공민왕때 공민왕이 노국대장 공주 침전까지 무상출입한 요승 신돈 때문에 고려가 이성계에게 망하듯....

대원군은 민비때문이 아니고 요승 ‘이동인’ 때문에 나라가 망할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얘들아, 요승 이동인부터 없애 버려야지?”

라고 대원군은 중얼거린다.

“너희가 이동인이란? 중놈을 ! 보았느냐?”

라고 그는 안필주와 천희연을 번걸아 바라본다.

안필주는 대답했다.

“대원위대감 ! 짐작이 갑니다. 봉선사 스님입죠!!”

천희연이 말했다.

“대원위대감 !  소인은 모르는 중놈이 올씨다 !”

“그래 !”

대원군은 입맛만 쩍쩍 다신다.

“배봐라 !”

“군함 아닌가?”

“그래 군함이다 전에도 본 일이 있었는걸 뭐?”

“미국밴가?”

“전번 왔던 배 보다 크다 !”

아냐? 청나라 군함이군!

사람들은 군함을 바라보며 왁자지껄 떠든다.

 

사라져가는 큰꿈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

재떨이에 담뱃대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고 대원군의 쩌르릉 울리는 호통소리가 터졌다.

“네이!” 여기대령하여 있사옵니다.

몸이 날렵한 안필주가 먼저 달려오고 천희연도 육중한 몸을 이끌고 뛰어왔다.

“이놈들이 어찌 어릿어릿 하는고?”

대원군은 방문을 드르륵 연다.

바라보이는 언덕빼기에는 진달래가 불타듯 온천지가 붉은 페인트를 칠한듯 화려하다. 뻐국새 소리가 들린다. 두견새 소리도 곁들여 들린다.

대원군은 공덕리 별관에서 두견새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달래 붉은꽃도 눈에 들지 않았다.

인천 앞바다 한국 군함탓이기 때문이다.

장순규와 하정일을 인천으로 내보내 알아오라고 지시한다.

 

이조 고종 8년 !

단기 4304년(서기 1871년 11월 1일, 음력 신미년 9월  19일)

(강일순(姜一淳) : 존호 : 증산 甑山 자함, 사옥(士玉) 탄강하시다. !)

(광산 ; 김일부와 함께 동학혁명의 씨앗으로 …‥.)

탄강하신 마을 객망(客望里) 즉 손님바래기 마을이 신월리(新月里)로 개칭됨.

 

  이동인은 실망했다. 권모술수부터 쓰는 민중전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동안 민중전에 대한 충성심은 그녀가 고독하고 순수하에 있었다 !

그러나  중전은 자랑스러운듯 그의 계략을 말하고 있었다.

허술하면서도 당차고…‥.  순진한듯 하면서도 뱀처럼 지혜롭고 …‥‥. 도시 민중전은 알수가 없는 여인이다. 그러나 이동인은 이렇게 권모술수 계략으로 국민을 속이려 하는 민중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사!, 전권대사가 되어 청나라 황제를 알현하고 오세요.”

이동인은 어이없는 빛을 보냈다.

“빈도는 미천한 몸이옵니다.  갈수가 없나이다.”

민중전은 불쾌한 낮빛으로

“대사는 항상 정대(正大)한 말만 하는구료!”

“세상일이 꼭 정당하게 만 될수 있겠는가?”

“갈만한 사람이 없대두요?”

청제의 이름으로 조선 백성을 강압함은 불가하오이다.  즉석에서 반기를 든 이동인은 목에 칼이들어와서 아부하는 일은 없는 인물이다.

꽃이 만발하고 수양버들가지 녹색으로 푸를때 인천 앞바다는 뜻밖에 배3척 군함이 나타났다.

  그런 점이 그녀의 매력으로 보였다. 너무 완벽한 여자를 어느 남자가 좋아할까? 이날… 이동인이 대궐에 들어갔을 때 … 중전은 감기 몸살 증세가 있었다. 불그레한 얼굴로 안석에 기대러 앉아 있다가 이동인을 보자마자 곧

“이대사!”
“민심을 얻으라는 뜻의 전일말씀에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은 것 같소이다! 우정 백성들의 뜻을 거슬러 그들을 격조시킬 까닭은 없을 거요. 그래서 내가 한 궁량을 생각해냈지?”

  한다. 이동인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궁량이라 하옵시면?”

“궁량이라야 별 것인가? 조정에서 이국과 수호조약을 채결하는 줄을 백성들이 안다면 또 시끄럽게 떠들고 일어날 것인즉! 먼 첨 청국 황제의 병으로 청나라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서 우리나라 조정을 겁박하는 체 해 달라는게야. 우리 조정은 청나라의 협박에 못 이기는 체… 이국과 통신수호 조약을 체결하는 것처럼 하고 말이야!”
“그러하오면?”

  이동인 재차 묻는다.

“내가 북양대신 이홍장에게 계책의 진실을 이야기할테야? 나는 대사의 간언에 깨닫는 바가 있어서야!”

“……”

  소녀같은 민자영이 순진무구한 줄만 안 이동인은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권모술수 대가가 된 민중전 아니신가?

“(변해도 많이 변한게야) ……”

  이동인이 구름재 대원군을 만난 것도 …. 민중전의 급한 부르심을 받고 입궐하던 때였다. 그는 행차의 편교자에 높이 앉아 있는 분이 누구인가를 금새 알아챘다. 흡사 대원군 이하응!  고루 완매 고집불통의 쇄국주의자! 국제 대세 흐름을 모르고 천주교 탄압으로 외교에는 병신 짓을 자초했고 …. 묵은 유교 사상의 허수아비 권력에서 끝 떨어진 낙방거사 이하응이다. 이동인은 대원군을 존경하지 않았다. 그의 인간 평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가 아무리 세간에서 주목하는 명망가라도 존경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대원군을 노려보기까지 한 후 행차를 배웅했던 것이다. 그는 老子 도덕경이 생각났다. 老子 曰 大國을 다스림은 소선을 삶음과 같다! 라는 말의 뜻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모든 일을 너무 빈틈없이 하고 유루(遺漏)없이 한다면 오히려 실패를 본다! 대원군이 실패한 원인이 바로 그런 점에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전 민 씨의 하는 것에는 틈이 있었다. 이동인의 눈에는 ‘자기 딴에는 완벽추구 여성같지만 이동인이 보는 것은 민씨 중전은 허점투성이였다.  

이동인은 후세에 가서 역사가의 심판을 받드라도 민중전만은 올바른 정책을 쓰도록 도와드려서 보필하고 싶은 마음으로 … 충성심이 저절로 우러나오도록 이끄는 묘한 마력같은 매력의 민자영 중전이라고 깨달았다. 이동인은 처음에는 민중전 눈에 들어 자신의 야망을 채울려고 시도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젊은 여성으로서의 중전의 매력에 끌려 들어간 이동인이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방은 이 나라에 있는 가장 지엄한 자리에 있는 여인으로 자신은 애욕을 멀리할 불재가 스님이 아닌가? 그래서 인지 이동인은 여러 번 자기 개인 청탁보다는 민중전 정책을 위해서 실력을 바치고 싶은 심정으로 변해갔다. 그렇게도 치열하던 자신의 야망이 줄고 민중전 만을 위하는 충성심이 늘어간다는 사실을 스스로 생각해도 기이한 일이었다. 역사에 훌륭하게 기록 될 민중전을 뫼시고 싶은 이동인이었다. 그는 자기 지식과 있는 재주를 다하여 한미조약을 초안했다. 그리고 중전이 부르면 언제나 입궐하여 여인이 좋아하는 은근한 목소리로 옳은 도리를 이야기해준다. 중전이 앉으라면 앉았고 서 있으라면 언제까지나 서 있었다. 중전 민씨는 학대하기도 하고 환대하기도 해서 당근과 채찍으로 이동인을 다루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의 언변을 믿는다. 왕비를 사로잡았다고 확신하는 이동인이다. 그러나 고종은 달랐다. 호락호락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중전의 말에서 농락당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 이동인은 한탄한다. 중전을 언변으로는 사로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어려운 일을 맡아 수고가 적지 않군!”

“청국의 북양 아문에서도 초안이 다 된 모양이야. 그러나 이 조약은 우리나라에 관한 일이니 우리가 만든 것은 북양 대신이 마련한 초안보다 월등 우수한 것이어야 해?”

  중전은 위엄을 가지고 명령하는 듯 말했다. 이동인은 이 같은 중전의 위엄 속에 숨어있는 혼란을 깨달았다. 중전도 괴로운 것이다. 궁중 궁권 속에서 남의 입초에 오르내려서는 안 될 몸으로 가슴 속에 사랑의 정을 품었다면? 그 여인의 심정은 그 얼마나 애달프고 조심스러울 것인가? 중전의 그런 태도는 말씨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 다 같은 사람의 괴로움이 이 존대(尊大)한 여성 권력자의 주변에 그 어떤 애감(哀感)같은 것을 풍기고 있었고 …. 그것이 또한 그녀의 권력을 지탱하게 하는 주변 사나이들을 이끄는 매력(魅力)이 되기도 했었다. 이 대목에서: 강재섭 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를 《애련(愛憐)》존승을 받을 수 있는 매력이 대통령 후보감으로. 그러나 파리대첩에서 눈길이 옮겨 이동인 쪽을 바라다 보는 중전의 눈길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애련(愛憐)의 눈빛이었다. 이동인의 가슴은 마구 떨렸다. 그도 호남형 사나이다. 갖가지 역경속에서도 무엇을 무서워한 일은 없었다. 맹수가 포효(咆哮)하는 봉원사의 산길을 밤 중에 혼자 걸으면서도 일엽편중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밀항을 할 때의 그의 배짱도 무슨 일이든지 겁을 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중전의 저 요염한 애련의 눈빛은? ― 이동인은 가슴이 떨리고 몸이 떨렸다. 중전은 잠시 이같은 이동인을 바라보며 …. 태연한 척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곧 눈의 힘을 풀었다.

“연미 조약의 초안은 거진 되었는가?”

  하고 정색을 한다.

  잘도 변하는 여인이었다. 방금 뜻 있는 듯한 댓거리를 짓는가 하며는 갑자기 피곤한 듯 우수를 띠고 야멸차도록 냉담한 모양을 보이다가는 혼연히 태산같은 위엄을 나타낸다. 이동인은 중전의 변화무쌍함에 안절부절이다. 이동인의 경륜따윈 이제 관심이 없는 민중전은 그 내용에 대하여는 그다지 열의를 가지지 않은 민중전은 그녀는 이 사나이와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느낄 정도로 그 얼굴만 바라본다. 어느 날 이동인이 지밀상궁 안에 들어갔을 때. 문갑 위에 자기가 일본에서 가지고 온 파리대접 한 쌍이 정중하게 모셔져 있는 것을 보았다. 고종황제가 진상받던 날 동궁에게 내리신다 하였다가 봉이의 말을 듣고 중전에게 다시 내리기로 했었다. 중전에게 구경시킨 후 동궁에게 전하길 내심 바란 황제는 중전눈치만 보고 ….

  다소 불길(不吉)해 보이도록? 화류 문갑기에 푸른빛을 내배앝고 있었다!

“파리대접 한 쌍을 흐뭇하게 바라다보시는 민중전이니 그 심저(心底)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이동인은 짐작이 가지 아니했다.

  파리대접을 보며 미소짓는 중전의 본 뜻도 확연히 짐작이 가지 않은 것 중의 하나였다. 이동인의 선물도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존중하거늘 이동인 그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겠느냐! 는 뜻일까?

  그렇지 안으면 단순히 황제로부터 그 물건을 받아 임시보관하는 중전이었는가? 아니면 곧 동궁에 내려 보낼 심사일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요승 이동인은?

  日本에 복택 유길 문하생으로 배운 여러 가지 경륜과 이론을 명성황후에게 납득시켜 자신의 출세 야욕부터 채우려고 애둘러 서둘렀다. 그에게도 차차 사나이다운 야망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의 정치적 수완을 한 번 크게 발휘해보고도 싶었다. 그리고 나라를 한 번 크게 발전 부흥시켜보고도 싶었다.

“황후마마”

  듣자오니 나라 안에 조정 관리들을 원망하는 백성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굶주리고 헐 벗은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킨다고 …… 동학란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이동인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중전은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 내용보다는 이동인의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것이었다.

“듣자하니 어젯밤에도 궁중내에서 잔치가 있었다 하옵니다. 무엇 때문에 날마다 잔치를 베푸셔야 하옵니까? 국고를 탕진하지 마옵소서!”

  이동인의 말이 열 받으면?

  중전은 내심으로 …?

  쾌감을 더욱 느끼는 듯 즐긴다!

“오늘도 잔치가 있소이까?”

  누구를 위한 잔치라고 힐문하듯 할 때면 중전은?

“그대의 마음을 불편케 해주기 위한 잔치지 무어야 ! ”

  하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 흥겨워했다(흥겨워하는 체 했는지도 모른다).

“이동인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드물게 보는 유능한 인물이옵니다!”

  그 사나이를 너무 자주 불러들인다는 소문에 중전은 선수를 쳐서 변명일색이었다. 무표정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이동인을 두고 변호한다 …. 그러나 이 사나이 이동인을 자주자주 만나 면담할 구실이 드디어 생기고 만다. 그녀는 이제 이동인을 자주 만날 명분과 구실이 생긴 이유는? 한미 한일 교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윤식 등이 청나라로 내왕하게 되자! 민중전은 이동인으로 하여금 한미조약의 초안을 작성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한미조약의 초안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기에 왕과 중전은 극비밀리에 작성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기에 왕과 중전 아닌 일개 개화승 이동인 이외에는 아무도 그 내용을 아는 자가 없었다. 중전은 외교조약에 능한 이동인을 외교 자문위원으로 임명. 자주 불러들여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김몽룡의 개그콘서트보다는 이동인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 듯 했다. 중전에게 … 복택유길에게서 사사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이 곧 《부국강병(富國强兵)》임을 강조했다.

  이동인은 고향생각이 났다.

  回文山과 임실군 구담마을 사이에 진뫼마을이 있죠. 진뫼마을의 징검다리가 매우 예쁘지요. 그런데 징검돌 가운데 하나가 우뚝크죠. 자세히 보면 윗면에 한자로 ‘자율돌(自律石)’이라고 새겨져 조각된 글자가 보이지요. 이 돌은 福石 乃至 幸運石이라서 日帝가 탐을 냈어요.

“글세 이 잡것(왜인)들이 언제 복돌까지 훔쳐갔어야? 다시 되찾아와 놓긴 놓았는디 …? 그 돌 덕분에 6․25 때 안상하고 살았는디”

“……”

“진뫼마을에서 … 구담마을로 이어지는 이십리 강변은 섬진강과 회문산 오백리 산길과 물길 즉 산태극과 수태극의 명당혈치 십승지다. 자전거 길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스로 정평이 나있죠”

“1998년 개봉된 영화 <아름다운 시절> 영화감독 이광모가 일곱달 구개월 전국을 돌다가 여기를 뒤져찾아 낸 영화촬영 마을 길이 다 <진뫼마을>이 곳이죠”

  주중궁궐 비단 연침 속에서 … 왕과 사이에 벌어지는 육체의 향연은? 민중전의 마음 속에 이동인의 모습까지 뚜렷이 … 잊으려해도 더욱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중전은 왕의 시원찮은 잠자리 테크닉에 … 실망하여 … 이동인을 자주 궁궐로 불러들인다. 그리하여 어떤 때는 불도에 대한 것을 묻기도 하고 살생을 빙자해서 데이트를 즐긴다. 그리고 일본 이야기도 물었다.

“대사! 일본여인들은 어떠하던가?”

(“아름답던가?”)

  농담처럼 그 같은 말까지 하기도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중전의 생각과 같이 … 그 이상의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동인은 하직하고 돌아가면 중전은 언제나 소란한 잔치를 벌렸다. 프랑스 루이 16세 왕이 왕비와 같이 잠자리를 같이한 이튿날이면? 밤 사이 궁전에서 잔치를 열듯?

  성에너지를 제대로 발산 못한 불만은 ?
  사치와 낭비로 한 세월 보내다가 !

  혁명군에게 작두단두대

  (기요틴) 이슬이 된 것 같이

  민중전도? ……! 마리앙뜨네뜨 왕비와 취미행각이 … 비슷했었다. 국모의 체보만이 아니었다.

“중전!”

“오늘은?”

  그러나 황제는 중전의 두 팔이 힘껏 그의 복을 쓰러 안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중전은 왕의 뺨에 마구 당신의 뺨을 비비고 있었다. 그 뺨이 젖었다. 그러나 황제는 중전의 우는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문득 중전이 짧게 흐느꼈다.

“왠일이오?”

“중전! ……”

“아니옵니다. 아무 것도 아니옵니다!”

  중전은 왕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이동인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동인은 지금 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중이라지만 혹 숨겨둔 계집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남에게나 계집이 있거나 말거나?”)

  중전은 고개를 젖는다.

“당치도 않은 일이야! 외간 남자를 생각하다니? 나는 상감 한 분을 오로지 남편으로 섬기며 살아 가야할 몸이야! 국모가 아니냐?”

(체모에 어그러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조(自嘲)의 웃음이 떠오른다. 그녀의 몸은 꿈틀거리며 왕의 품 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이동인의 경우에는 다르다고 … 느낀 중전이었다. 이동인이 물러간 후, 오래 그 사나이의 음성과 공손 엄중한 태도가 마음에 잔영을 남기고 있을 정도였다.

“신명을 바치고 또 바치겠나이다!”

  귓 속에 쟁쟁했다. 그 말이! 그 날 밤 중전은 이동인 환영연회를 거대하게 벌렸다. 광대들에게 소리를 시키고 외줄타기 묘기대행진 마술사 등 김봉룡 웃찾사 개그맨 같은 음담패설이 뒤섞인 재담꾼의 농담 개그까지 들으며 웃겼다(즐겼다). 이튿날 아침 늦게야 중전은 침수 드시었다. 그리고 중전의 뒤늦은 늦잠에 연달아 황제도 늦게 취짐하셨다. 기이한 일이 발견됐다. 중전의 몸은 전례에 없이 뜨거웠다. 그 뜨거운 몸으로 몸부림치듯 황제를 애무를 요구해오는 것이었다. 요부(妖婦)가 따로없다! 그녀는 전신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중전이 기름칠 맛사지를 받은 듯. 부드러운 전신은 젖가슴도 허리고 다리도 순연한 나체였다. 일국의 국모(國母)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야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처음으로 이 세상의 권력 이외에도 목마르듯 간절한 희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나이를 그리는 마음이랄까?? 뭐! 그런거지 그런거야!”)

  민 중전은 전기에 감전된 듯 떨리는 손 끝을 치마 안에 숨겨 감쌌다. 이동인은 엎드려 부복자세지만 감지하고도 남을 수가 있는 도인이다. 무엇인지 모르게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견딜 수 없는 야릇한 두려움과 황홀함이 함께 몰려옴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나를 위해 신명을 다 바치겠다고?”



《주면 주고! 말만 말지 ?》

《주면 주고! 말만 말지 ?》

민중전의 평소지론이다.

한미조약, 한영조약을 막후에서 조력한 청국 이홍장에게 보낸 예물과 뇌물은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오랜 흉년과 경복궁 중수로 국고가 바닥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루이 16세 왕비(마리앙뜨와네드)처럼 사치 낭비 !  그리고 퍼주기식 뇌물은 막가파 왕비의 말로인 듯 …‥.

궁중에는 암흑의 망조가 드리워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주면 주고(화끈하게) 아니면 말고 …‥ !’

민중전의 여걸다운 캐치프레이즈였으니 !

금괴(金塊), 은괴(銀塊), 홍삼(紅蔘), 산삼(山蔘) 세죽렴(細竹簾), 화문석, 채화석(彩花席), 돗자리, 안동복(安東福)과 불로주(不老酒)등, 조선의 명산품 들은 바리바리 청국에 실어 보낸 민중전이었다.

중전은 또한 사내인 화방까지 궁중으로 불러드렸다.

화방은 좀 마른듯한 체격에 이목이 준수하고 특히 눈동자가 검으며 곱게 벗어 너긴 머리카락이 절로 굽실거릴 정도로 미남자였다.

  (앞으로 잔치를 열때마다 두사람의 재주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라도 함께 불러야지!)

내심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생각하는 민중전 !그녀는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들의 검은 뱃속은 알수가 없다.

총명한 중전도 지금 김몽룡의 가슴속에 품은 비수를 ? 알수는 없는 법이다.

그의 시샘의 비수는? 장차 그 어떠한 비극을 불러 일으킬는지는 더군다나 알길이 없는 것이리라.

진치는 밤새도록 계속하고 그 이튿날 새벽 寅時(03시~05시)에 쯤 파했다. (끝냈다)

그리고 이로부터 닷새후 영국 군함한척이 영국해군 중장(中將) 월스를 태우고 인천항에 들어왔던 것이다.

윌스는 한미조약과 같은 조건의 조약을 체결하러 온 영국의 전권 대사이자 함장이었다. 그들도 미리 천진에 가서 이홍장과 협상후 양해각서인(MOU)를 체결후 조선으로 나온 것이다.

고종황제는 4월 21일 조영하, 김흥집을 제물포로 보내 한영조약을 조인케 하였다. 고종황제는 한영조약 막후 조정조력자인 이홍장과 서태후 그리고 청국황제에게 각각 예물을 바쳐 답례하였다.

민중저는 쾌감을 느꼈다 !

그는 궁중행사때마다 그녀는 말석 저 댓돌 아래 자리잡고 있는 요승 이동인과 대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계하에서 목청만 뽑는 초청 남진 가수처럼? 광대 출신 김몽룡을 번갈아 바라본다.  민중전은 두사람 다 참으로 잘 생긴(장동근 배우 처럼!) 미남자들이라고 느꼈다.

  이동인은 사나이답게 헌출하고 선풍도골 인상이고 김몽룡은 이목구비가 빚은 듯이 아름다웠다고 느낄 정도로 미남(美男)이었다.

모든 여성들의 선망을 받을만하다. 궁중계집 상궁나인들도 법석을 떨만 했었다. 그러나 이 사나이들은 모두 젊고 고운 계집들을 모다 물리치고 한결같이 민중전의 앞에 열복하고 있는 것이다. 갸륵했다. (그들의 연정과 충성심이 융합되었다고 할까?)

  민중전은 한미조약이 무사히 체결된것도 기쁘거니와 그에 못지않게 두 사나이를 한자리리에 불러다놓고 비교하며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김몽룡은? 대궐 밖에도 잘 나가지 아니하고 오로지 민중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온갖 각본을 다 짠다.

새로운 볼거리 ! 웃찾사 게그 프로를 만들기위해 밤잠까지 설칠 정도였다고 한다.

  “이동인(요승)은? 십오한 그의 학식과 국제정세 귀동냥에 밝은 점 즉 한미회담의 제물포조약의 최초 기초 초안자료 간택될 정도로 발굴의 실력자였다.

  “그렇지!” 이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나를 위하여 심혈을 경주하는 것은 나의 권력을 두려워 했기 때문만은 아닐것이야 !“

  “나 자신을 연모하고 있기 때문일세 !”

  여관 송이에게 거침없이 민중전은 속내까지 내비쳤다 !.

박정희가 이후락과 김종필을 경쟁시키듯이 …?!

  박근혜도 김무성과 서청원을 앞으로 경쟁시킬 듯  그것은 시아버지가 천,하, 장, 안 네놈의 신복으로 <여우사냥>을 기획 ?  하고 <임오군란> 등등을 주도하면서 ! 며느리에게 먼저 몹쓸짓까지 한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나머지 분풀이로 배운 탓이다.

  따라서 풍각쟁이 줄타기 배우 출신 김몽룡과 일본 10만엔에 초상화로 오를 정도로 저 유명한 복택유길(福澤諭吉)의 제자 ! 이동인(스님)의 그 해박한 국제감각을 알고있는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  그리고 중전으로서의 당신의 매력과 위력이 얼마만한가?를 시험해 보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는 두사람 ‘사나이’를 다 굴복시킬 수 있었던 여장부였었다.  (돈으로 ! 권력으로도 !, 애정으로도 !)

  天下에 오입장이 출신  ?

김몽룡은 도화살이 있는 남자다 !

그는 이를 부드뜩 갈았다. 그는 질투의 화신처럼 ?

“ 저 중놈을 ! 그대로 둘 수는 없지 ? ”

라고 치를 떨었다.

몽룡은 “중놈의 새끼가 고깃맛을 보면 절에 빈대껍질 하나 남기지 않는다더니 ! 민중전과 사랑이라도 나누는 운우(雲雨) 정사(情事) 장면까지 … 연상할 정도로, 흥분하였다.

  “…‥  !!!  ??”

  “이놈 중놈아! 아리수 한강수에 너는 이제 물고기 밥이 될줄 알렸다 !”

  몽룡은 ? 벼르고 별렀다. 그의 얼굴에는 살기(殺氣)가 하늘로 뻗쳤다.

섬뜩할 정도였다.  그러나 중전은 이 두 사나이에게 충성경쟁을 시키면서…‥. 즐기고 있었다. 흥미도 느꼈다. 대리만족(카타르시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광대(배우)출신 김몽룡은 그좋은 목청을 가다듬어 민중전 명성황후 십팔번(18팔번)을 불러…‥ 양위분을 흡족케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의 호수같이 검게 젖은 두눈은 ?

너무나 깊고 맑아서 …‥.

민중전의 짙게 단장한 얼굴을 남몰래 훔쳐 훑어보곤 했다.

몽룡은 한동안 중전의 마음에 들어 궁중에 별궁 입십로까지 들어와 있으면서 중전이 부르실때마다 그 앞에서 노래와 재담(웃찻사 게그)을 아뢰곤 했으나? 한미조약을 뜸들이는동안 부터는 간만에 부르심을 받은 터였다.

  몽룡은 중전의 앞에서 재주를 보일 때 마다 막대한 상금을 하사받았다. 그는 광대(배우)출신치고는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중전의 부르심을 받지 못하니 십중에 울화병이 도질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내탐하여 중전이 이동인 요승에 빠져서 그를 멀리한 것으로 파악했었다.

  “중놈의 새끼를 가까이 하시다니?  나라가 망하려고 ! ” (요승 ‘신돈’과 노국대장 공주를 연상한다 !“

그것은 ? 민중전이 요승 이동인을 위로하는 잔치가 너무너 거창하였기 때문이다. 악공들은? 붉은옷! 뿔없는 사모를 쓰고 아악을 연주하며 금잔, 옥잔에 술을 따르기가 바쁘다.

낙화가 훌훌 떨어져 술잔에 뜬다.  흡사 죽림칠현 같았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꽃보다는 더 예쁜 연두색 저고리 노랑저고리 분홍저고리 옥색저고리들이 휘황차란한 불빛아래서 더욱 가관이었다.

민중전은 요승 이동인과 줄타기 / 마술사 / 김몽룡을 충성경쟁이라도 시키는 듯 ... 적당히 당겼다가 밀고 밀었다가 당겨주어 조정을 하는 듯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광대 김몽룡은 잔치가 있는 날 궁중 전각 밖에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양위분에게 금준(金樽)에 가득찬 술을 옥잔에 받쳐들고
  “심중에 비옵나니 부디 만수무강 하소서 !”

남산(木覓山)이 이 뜻을 알아 사시상청(四時常靑)하소서! (YS 방 액자글 !)

  “이러다가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 ? 아무도 모른다”

라고 떠든다. 그러나 중전은 이같은 반대 상소소리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동인은 당신이 신임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주어도 어떤 직함을 내려도 아깝지 않는 것 같았다.  이동인이 육품직에 대원군은 격노했다.

  “이년이 실수를 또 했구나 ?”  며느리를 이년이라고 까지 막말을 한 대원군이 다시

  “후회할 날이 올것이다 !”  이어서 천희연도 말했다.

  “그것봅쇼. 대원위 대감님 ! 공연히 대감마님께서는 인정을 배푸셨지 뭡니까 ! 잡아 오라 하시기에 잡아오니 또 놓아주시고 저 으슥한 담 모퉁이에서 때려 죽여 거적에 싸여 강물에 던져 물고기 밥이 되었을 놈을 왜 살려줘 이 망신을 당합니까요?

이때 대원군은 재떨이를 “탕탕탕” 연속 3번을 두둘려 패듯이 재떨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듯 했었다.  꺼구로 그놈은 요승 ‘신돈’보다는 낫다 !

라고 이동인을 칭찬했다. 그의 우울한 마음을 헤아려 풀어주려고 했었다.

아닌게 아니라 민중전은 새로운 국제용어가 섞여 있는 한미통상조약 초안을 손에 들고 볼때마다 매우 매우 만족했었다.

그의 후원은 받은 스님 중(사나이)가 이만한 새 지식을 가졌다는 사실이 대견스러웠다. 

  이동인은 ?

  제갈공명이나 청국의 이홍장에 못지 않는 역량을 가진 인물이라 민중전은 믿는다.  다만 출신이 중이기 때문에 정부의 요직에 앉힐 수 없는 것을 한스럽게 여길 정도로 그 남자에게 미쳐  있었다.

그래서 중전은 이동인이 한미조약의 초안을 완성하였을 때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왕께 아뢰시 그에게 육품격(六品職)에 해당하는 벼슬을 내렸다. 그것은 참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의 대 용단이라 아니할 수 없을 정도였다.

  “뭐라고?”

  “중놈에게 벼슬을 또 줘?”

  운현궁 이하응은 노발대발 하였다고 한다.

  중전의 말이라면 어떤 일이거나 지당하다는 한마디로 통하는 조정 대관들도 이 일에 대하여서는 굉장한 반대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전에 대원이 상인에게 벼슬을 줄 일이 있었지만 중에게 품직을 준 일은 없었다.

  “이건 너무 심하구나 ?”

 고급유리(파리)접시는 싸늘한  감촉으로 느껴졌다.

일본(日本)의 비(比)수 칼(刀)(사무라이) 닙본도(日本刀)의 싸늘한 기운이 감돈 듯....!?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는 요승 이동인을 연상(連想)하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가까이두고 곁을 떠나게 하고 싶지 않는 민중전의 정인(情人)인 요승 ! 이동인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날아가는 새라도 떨어뜨릴 것 같은 天下를 주름잡고 있는 민중전 마마로서도 가망이 없는 소원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이동인이 가져다준 파리(유리) 대접(국보급)을 곁에 가까이 두고 바라본다. 어찌하여 사나이 하나가 이렇게도 그리운지? 민중전으로서는 알수가 없었다.

청국배, 미국군함이 제물포에 들어와 정박중이라는 소식에 이동인은 시무룩 했었다.  그 시무룩에 하는 모양까지 형용할 수 없이 충성심으로 여기는 민중전은? 이동인의 기분전환용 덕담을 한다.

  “대사가 초안한 한미수호통상조약의 조안 참 잘되었소!”

민중전은 요승 이동인의 너무나 잘 생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대사 ! 대사야말로 나의 ‘장자방’ 혹은 '이홍장‘이 되어 주시구료 !”

하고 가만히 속삭이며 말했다.

이동인은 중전이 외국 군함을 불러들여 자기나라 백성들을 압박하려는 일에는 애시당초부터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중전을 바로 보좌하려는 일념(一念)이 가슴속에 꽉 찾았다.

그러니까 민중전은 정감이 넘치는 아리따운 목시로 

  “나의 장자방이나 제갈공명이 되어 주시구료”

라는 말을 들으니 요승 이동인은 고려말 노국대장공주가 공민왕을 멀리하고 요승 신돈을 가까이 불러 책사로 기용한것과도 같았다.

북양대신 이홍장이 서태후를  받드는 것보다 민중전을 받들어 모시리라 느낀 요승 ! 이동인은 ? 중전을 진심으로 받들어 모시기 때문에 외국 군함을 끌어들이는 (연극)에는 동참할  수 없다고 마음 먹느낟.

이동인은 용기를 내어

“중전마마 ! 빈도는 외국 세력을 끌어들이는 일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불태우는 경우가 생길 수 있나이다 !” 통촉하소서 !

  “불가하오이다 !” 목숨걸고 반대했었다.

 민중전은 민영익 등 친정 부스러기 벼슬아치를 동원해서 지금 정부가 상국인 청나라로부터 연미정책에 대하여 견딜 수 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었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라도 지금의 입장을 소문애게 하여라 !”

  전일 시아버님 흥선 이항은은 걸핏하면 천하장안, 사람을 사서 백성들을 선동하였지?
  “…‥”

  권모술수의 대가 흥선대원군의 하는 짓은 다 나쁘지만 그런 지략은 좀 배워도 좋아 !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것처럼?)

라고 민중전은 거침없이 말했었다.

  중전의 명을 받은 민영익 등이 ‘돈’을 뿌려 지금 상감인 고종과 대신들이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라는 청나라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등 풍설을 퍼뜨리는 것은 ?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외국 그런 압박감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순박한 조선의 무지랭이 백성들은?

청나라의 위세에 떨기도 하고 상감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기도 하도록 여론 조작술에 능수능란한 여걸인 명성황후 민자영이었다.

이렇게 하여 청나라 배가 들어와 조선 백성들은 잔뜩 겁박 위협 후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위한 미국의 <슈벨트>제독이 인천 앞 바다에 들어 올수가 있었든 것이다.

  청국군함을 보고 놀란 백성민초들은?

 미국군함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 ? 나 자빠지는 백성들이 있을 정도였다 !

 “한 척의 크나큰 군함 미국배와 3척의 청나라 군함은?  인천 앞바다에 떠 있었다.”

민중전은 청국 군함과 미국 군함이 제물포에 들어와 말없는시위로 백성들의 간담이 서늘해 지게 했지만 눈도 깜짝하지 아니했었다.

  “흥선군도 귀가 있다면 !?” 그 같은 소문을 들었겠지?  외국 군함이 우리 앞바다에 들어 왔다는 사실을 들을 때 얼마나 그 완고 덩어리가 화통이 터졌을까?

 “그렇지 않느냐?” 민중전이 말했다.

  기색을 해서 쓰러지기라도 했더라면 더 재미 있을 것인데... 민중전은 !

  봉이 여관을 돌아보면서 …‥.  철천지 원한이 대원군에게 생겼나?

  “그렇지 않느냐?”

  “흥선군도 이 일만은 간덩어리가 털썩 떨어졌겠지?”

  중전은 파리대접 (이동인 요승 일본 복택유길(福澤喩吉) 선물 기증분)을 쓰다듬으면서 봉이 여관을 뒤돌아본다.

  임진왜란때 선봉장 가토기요마사의 고향땅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가담자 48명 가운데 21명이 이곳 출신이다. (註a. 그래서 역사는 윤회하는 것이다 : 2014. 10. 8. 수요일 月33면 조선일보)

기독교에서는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폄하하지만 불교에서는 기독교를 개독교(犬督敎)라고 폄하하지는 않죠....

佛敎의 輪回, 윤회사상을 기독교처럼 무시하지 아니하지요.

임진왜란때 선봉장 가토기요마사 고향땅에서 명성황후 시해가담장 총 48명중 21명이 그곳 출신은? 기독교에서 무시한 윤회를 입증한 세이지요.

그곳 출신 지요카산 회장은 오늘 경복궁 명성황후 시해장소에서 만난 한국사람들은?

 요즈음 일본아베정권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들을 따뜻하게 대해줘서 한국인들의 너그러움에 무한 감사하고 있단다.

 

  “나 84살이지만 죽기전에 …‥.!”

  구마모토에 명성황후 위령비를 세우고?

  실소이다! 라는 눈물까지 보여준다 !

  그들 사무국장 야스하라(72)씨는 식민지배(36년) 우쭐사상교육을 일본 교과서에서 지우기 운동을 ?

  가이씨는 전쟁포기(일본 헌법 제9조)가 금년(올해)의 노벨평화상 후보로 유력하다는 한국의 조선일보 기사를 스크랩 북까지 해왔다.

  “국제분위기가 이러한데 아베총리는 끝까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오리무중 한일근대역사>로 일관함은 못마땅하다고 까지 성토했다.  가이씨는 전생에 한국인 특히 명성황후 친정 피붙이기나 그를 짝사랑 연모하다가 도선국사처럼 명성왕후 시해날 일본 사무라이 칼까지 앞에서 막으면서 순직한 이동인 스님의 환생 남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아베총리는 정신대(위안부) 및 마루타 731부대의 생체실험(윤동주 시인도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죽어감) 사실은 부정하고 기껏 윤동주 서시를 일본고등학교 교과서에만 실어(주었을뿐) 위령한체 했죠.

아베는 오늘날까지 독도영유권 주장같은 한일역사 왜곡 사실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않고 있어요.

가이씨는 우리라도 나서서 젊은 일본세대들에게 한일간의 진실되고 정확한 역사의 사실만을 가르쳐 줄 책임과 의무가 있죠 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주민 출신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런 사실도 모릅니다요.”

  제대로된 역사 인식없이 진정한 동양평화는 없죠.“ 라고 말했다. (2004년)  이듬해부터 직접 역사 ‘현장’을 찾기로한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에 적극 가담했던한성신보 주필 구니토모 사케아키(1861~1909)의 외손자인 가와는 다쓰미와 함께 홍릉을 찾았어요. 묘소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

  이라면 참회 회개 반성의 (그들 조상의 죄이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렸어요.  84살 가와노 옆에서 모든 참가회원 전원이 따라서 울고 갔답니다.

정수웅 감독은?

  “안중근 의사가 이또오히로부미(이등박문)을 쏜 가장 큰 ‘대의명분’은 명성황후 시해죄라고했어요.” (이등박문 10.26 : 박정희 10.26, 우연인가?)

백범 김구도 시해죄 복수로 일본낭인 사무라이 헌병을 맨주먹으로 쳐죽이고 구속된 후 탈옥해서 마곡사에 숨어 들어가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된기록이 ‘백범일지’속에 녹아 스며 들어가있죠.

 

근대한국과 일본의 비극은?

  명성황후 암살 시해사건부터 본격 시작된 셈이죠 !

<일본 열도 전역에 ………明成皇后 慰靈碑를 !>

일본인 전 현직 교사출신들이 모여서 가칭 <일한화해협력재단>을 세웠다.

정관에는 “명성황후를 사모(생각)하는 모임” 줄여서 즉 ‘명사모’ NOG단체인 셈이다.

  회장은 후루사와 지요카쓰(87)씨다.

회장단 15명이 2014년 6월 한국에 다녀갔죠. 을미사변(1895+120) = 2015 내년을? !  “앞두고서다”!

  2014. 10. 8 (1895. 10. 8. 일미사변일) ‘민자영’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제사까지 올린 바 있다. 그들은 2005년부터 매년 한일 화해협력(해원상생)목적으로 금년(2014) 열 번째 한국 남양주를 (홍릉)참배하고 되돌아갔어요.

  정수웅(71세) 다큐멘터리 감독이 2015년 “110년만의 추적!”

  명성황후 시해사건 촬영이 계기였죠.

  2004. 11. 어느날 취재원이던 가이도시오(85세)씨가 역사의식을 가진 주변의 교사 13명을 모아(첫) 조직을 했지요. 전직 영어교사출신인 가이도시오씨는 “명성황후마마님 시해사건을 처음 알게된 나이 예순(60) 회갑날 꿈에 명성황후 환생녀와 함께 나투녔어요.” 대부분의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한일합방 전후역사 즉 특히 명성황후 마지막 역사는 가르쳐 주질 아니합니다요



1 2 3 4 5 6 7 8 9 10 다음